지난 주 임명동의 투표 직후 단행된 조직 개편과 후속 인사 등을 통해 명실상부한 ‘박정훈 경영진’이 체제를 완비했다. 이제 SBS 흥망성쇠의 책임은 고스란히 새 경영진의 어깨에 지워졌다.

책임이 무겁긴 해도 새 경영진은 적어도 임명동의 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만큼 어느 때보다 강력한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참여를 추동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 위에 서 있다. 문제는 새 경영진이 화석처럼 굳고 낡은 조직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임명동의 투표에서 드러난 구성원들의 열망을 변화의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느냐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지난 1일자 성명에서 밝힌 ‘단절’과 ‘혁신’을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신뢰의 위기, 구조의 위기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 일터를 새롭게 할 기본 원칙이 바로 그 두 단어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1. 인사

박정훈 사장은 1일 자 “새로운 출발을 선언합니다” 담화를 통해 ‘경영은 사람이 전부’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맞는 말이다. 역으로 그 말은 곧 지금까지의 SBS 경영이 ‘인사가 만사’라는 경영의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 수준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본 중의 기본인 인사원칙에도 ‘단절’과 ‘혁신’이 절실하다. 조직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방송의 공적 책무보다 대주주의 사적 이해를 우선시해왔던 구태인사들을 과감히 배제해 과거와 단절하고 과감한 발탁 인사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혁신의 비전을 보여줘야 박 사장이 말하는 ‘자부심이 충만한 조직 문화’의 토대가 구축될 수 있다.

하지만 임명동의 대상이 아니었던 일부 보직자 인사와 기술분야 인사 결과를 두고 과거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구성원들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00%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인사는 불가능하다 해도 구성원들이 ‘실사구시’, ‘적재적소’, ‘세대교체’라는 방향성과 비전을 공감할 수 있는 인사였는지 사측 스스로 평가해 볼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실책을 인정하고 과감히 교정하는 게 박 사장이 선언한 새로운 출발에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새해 1월 단행될 승진과 추가 인사에서 ‘단절’과 ‘혁신’이 뒷받침된 실사구시, 적재적소, 세대교체의 인사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는지 노동조합은 엄중히 지켜볼 것이다.

 

  1. 사업구조

 역사적인 임명동의제 합의와 더불어 노사는 지난 10.13 합의를 통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10년 동안 이어진 부당한 수익 유출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그 후 몇 차례의 실무논의와 물밑 대화가 있었으나 만족할 만한 수위의 의견 접근은 이뤄지지 못했다. 부당하게 SBS의 수익을 유출시켜 나갈 때는 온갖 불·탈법을 무릅쓰길 주저하지 않다가 정작 빠져나간 수익의 원상회복 방안을 찾자는 논의 과정에서는 거꾸로 법적 한계 등을 표면적 이유로 거론하며 사측이 소극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SBS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주회사 체제의 이익을 SBS의 이익과 동일시하거나 혼동하는 과거의 잣대와 ‘단절’하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사업구조로의 ‘혁신’은 불가능하다. 향후 재개될 사업구조 재편 실무협상 과정에서도 사측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조합은 조합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박 사장이 담화에서 밝힌 안정적 경영수지 기반을 확보하고 싶다면 사측은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라. 더 이상 사측은 SBS의 이해에 반하는 구조의 대변자가 되지 말라.

 

  1. 방송 자율성과 독립성

무엇보다 경쟁력의 원천은 콘텐츠이다. 콘텐츠 경쟁력을 저해해 온 여러 요인들이 중첩적으로 존재하지만 지난 10년 무엇보다 우리를 괴롭혀 온 것은 방송 사유화이다. 대주주의 사임과 임명동의제 시행 만으로 저절로 한 순간에 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살아나고 콘텐츠 경쟁력이 회복될 수 없다.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창의를 꺾어 온 부당한 관행들과 ‘단절’하고 꽉 막힌 소통을 ‘혁신’해야 한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바닥까지 떨어져 회복되지 않고 있는 보도 신뢰 제고를 위해 기자들을 대관업무 담당자로 전락시켜 온 부적절한 정보수집과 최고 경영진에 대한 주례 보고서 작성 등의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명박 정권 당시 사측의 일방적인 실명화 조치로 기자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아온 보도본부 내부 소통망에 다시 익명성을 보장해 인사 보복 등에 대한 두려움 없이 누구나 우리 뉴스의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소통의 ‘혁신’을 단행하기 바란다.

  1.  이사회

진정한 SBS의 독립 경영을 위해서는 이사회의 재편이 필수적이다. 지난 10년 SBS에서 벌어졌던 모든 불·탈법적 경영행태를 묵인하며 거수기 노릇을 해온 기존 이사회의 관행은 SBS 경영 위기의 핵심이다. 이사회가 이런 과거의 관행과 단절하려면 이사진의 재구성이 필수적이다. 구성원들이 비록 대표이사 사장 등 이사들에 대한 대주주의 임면권을 인정했다고 해서 이사회를 또다시 대주주의 거수기로 전락시켜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번 경영위원 등에 대한 신규 인사를 통해 이사진의 재구성은 불가피해졌다. 대주주와 사측은 다가올 내년 3월 주총에서 임명동의 투표를 통해서 드러난 SBS 구성원들의 ‘단절’과 ‘혁신’에 대한 열망을 제대로 받아 안을 수 있는 적임자를 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원격조정으로 거수기 노릇을 대행할 마네킹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신망을 안고 정확한 견제와 균형으로 박정훈 사장 체제가 새로운 SBS의 초석을 놓을 수 있도록 할 ‘혁신’ 이사가 필수적이다.

 

임명동의제도 쟁취까지 지난한 투쟁이 힘겨웠다고 해서, 또 그 성취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한 것이라고 해서 이제 적당히 해도 된다는 따위의 아마추어리즘은 SBS에, 그리고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에 존재할 수 없다.

RESET! SBS!를 향한 여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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