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지난 달 21일 노보 277호를 통해 사원들의 임명동의로 임기를 연장한 박정훈 체제가 지상파 방송이 처한 위기적 국면을 돌파할 비전과 전략 없이 단기실적에 매몰돼 표류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아울러 12월 정기인사를 통해 새롭게 전략과 비전을 가다듬고 ‘신상필벌’과 ‘적재적소’의 인사원칙 아래 Reset! SBS!의 책무를 이행할 태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달 30일 단행된 인사와 조직개편은 한 마디로 참사 수준이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채 독단과 불통에 빠진 박정훈 식 경영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안 없는 ‘현상 유지’…미디어 격변에 대한 무전략 무개편

우선 조직을 살펴 보자.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박정훈 사장 체제는 보도 본부의 내부 개편을 제외하면 아무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현상유지를 선택했다. 이미 낡을 대로 낡은 아날로그 시절, 지상파 레거시 미디어 중심의 생산 전략과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발상이 조직에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이는 장기적자가 만성화하는 구조적 위기를 탈피할 아무런 전략적 대안 없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상파 3사 가운데 ‘우리가 그래도 낫지 않냐’는 경영진의 자아도취를 보는 듯 하다.  그러나 SBS는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콘텐츠 경쟁력을 가지고도 적자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빅 이벤트 관련 제작비의 과다 지출과 광고 시장 축소에 따른 영향이라고 빠져나가려 할 지 모르나, 이런 위험요인을 상쇄할 어부지리가 결코 적지 않았음을 박정훈 경영진이 모를 리가 없다.  지난 해 내내 지속된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 이 과정에서 있었던 양대 공영방송 노동자들의 장기 파업 등이 올해 콘텐츠 경쟁력에 반영됐고 이에 따른 반사 이익을 SBS가 그대로 누려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이 같은 어부지리의 효과가 약발을 다해가자, 박정훈식 단기실적주의는 서서히 그 바닥을 드러내며 실적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근본적인 구조 개혁 없이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닥쳐오고 있는데도 SBS 경영진은 전략과 비전의 실종 속에 현상유지에 급급한 조직 무변화를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 와중에 양대 지상파 공영방송의 사장들은 연이어 ‘지상파 방송 최대의 위기’를 이야기하고 예전에 없던 조직개편과 대대적인 구조조정까지 예고하며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표 1 SBS 조직도

 

표 2 MBC 새 조직도

*MBC는 지난달 조직 개편을 통해 김영희 전 PD를 <콘텐츠 총괄 부사장>으로 임명하고 산하에 드라마와 예능을 포함한 4개 제작본부는 물론 콘텐츠 유통, 프로모션, 마케팅, 홍보, 사업 기능까지 포괄하도록 했다. 프로그램 기획, 제작 뿐 아니라 콘텐츠 유통과 마케팅까지 유기적으로 묶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또 신설된 전략편성본부는 MBC 본사와 관계사 전반의 콘텐츠 및 매체전략을 수립하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한다.

조직개편은 전 구성원들에게 어떤 미래 전략으로 생존가능하며,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SBS를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경영진의 답안이다. 10.13 합의의 완결적 이행과 SBS 중심의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해묵은 수익유출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콘텐츠 비즈니스의 컨트롤 타워’로서 SBS의 위상을 명확히 하는 대신 현상유지, 무변화를 답이라며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는 체제는 스스로 이미 수명을 다했음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은 바뀌는데…무혁신의 과거형 체제 지속

이러한 미디어 격변과 함께 SBS는 내년 7월부터 주 52시간 노동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현상유지’ 외에 아무런 고민을 담아내지 못한 이번 조직 개편은 당연히 새롭게 바뀌고 있는 노동 환경에 적응할 준비와 대안을 전혀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68시간 체제와 달리 52시간 체제는 조직과 제작 관행의 근본적인 혁신 없이 작동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기존 68시간 체제 합의의 일몰이 한 달도 남지 않았으나, 사측은 이번 조직 개편과 인사를 통해 노동조합에 이와 관련한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고 있다. 어쩌자는 것인가?

무혁신과 현상유지를 택한 박정훈 체제의 속내는 지난 달 13일 창사 28주년 기념사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기념사에서 박 사장은 조직과 제작관행 혁신 대신 ‘유연한 업무환경’,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문화’를 강조하기 바빴다. 이는 결국 노동시간을 측정하지 않아 무제한 노동을 가능케 하는 재량근로의 확대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자기고백이었던 셈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박정훈 경영진이 무혁신, 무대책의 조직개편과 인사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일방적 희생을 담보로 한 체제 유지 방안에 노동조합이 동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 체제는 청산의 대상일 뿐이다. 박정훈 경영진은 조합과 조합원의 희생과 양보만 고장 난 녹음기처럼 읊어대고 있다. 구성원의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려면 조직의 지속 가능한 미래와 노사 상생의 가능성을 혁신적 조직개편과 인사로 먼저 보여줬어야 하지만 박정훈 경영진은 다시 실패했다.

사라진 ‘신상필벌’과 ‘적재적소’…낙제점 무원칙 인사

무전략과 무혁신의 기조 속에 무변화를 택한 박정훈 경영진 아래 혁신과 원칙의 인사는 처음부터 기대난망이었다. 개혁과 세대교체는 시늉에 그쳤고, 보도를 제외하면 전 조직에서 현상유지를 택한 과거형 조직에서 과거형 책무를 수행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인사에서 ‘신상필벌’과 ‘적재적소’라는, 인사의 제 1원칙을 박정훈 사장이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형 조직 재편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미디어비즈니스센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 해 2월 전임 센터장이 퇴사한 뒤 조재룡 전 경영기획팀장이 대행으로 임명된 바 있으며, 이번 인사에서 조 대행이 유임되면서 미디어센터는 1년 가까이 대행 체제로 유지되는 기형적 상황을 맞게 됐다.

사측이 조 대행을 센터장으로 공식발령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조 대행이 과거 노사 관계와 경영 전반에 걸쳐 심각한 해악을 끼친 전례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 대행은 과거 드라마운영팀장 재직 시, 개인사정으로 목돈이 필요하다는 모 피디에게 8억원대의 비밀 계약을 맺고 회사 돈을 퍼주는 일탈행위를 벌이다 적발돼 사장이 노사협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사태를 빚었다. 또한 인사팀장으로 재직했던 2015년엔 노동조합에 회사의 영업이익 규모를 축소 통보해 서면 경고를 받았고, 그 해 임금 협상에서 결과적으로 전 사원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했다. 이후 경영기획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노사간 합의 원칙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콘텐츠 허브 합병을 추진하다 또다시 갈등을 초래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온갖 일탈적 행위가 문제가 된 인사로 책임을 물어도 몇 번을 물어야 했으나, 박정훈 사장은 지난 해 갑작스런 미디어센터장 공백 사태 속에 방만하게 전개되던 신사업 관련 수습 조치에 필요하다며 조 팀장을 미디어센터장 대행으로 임명했다. 어지간한 총애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인사다. 부적절한 경영위원 인사라는 비판을 의식해 ‘대행’ 꼬리표를 다는 꼼수를 썼으나 이미 조 대행의 역할은 사태 수습을 넘어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인사가 SBS의 미디어 전략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조 대행이 이런 비판을 돌파할 만큼 뛰어난 역량을 보여줬다면 모르겠으나, 미디어센터장 대행으로 보여준 성과가 아무것도 없다는 비판이 사내에서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결국 ‘적재적소’와 ‘신상필벌’의 인사원칙은 간데없고 박 사장의 측근이라는 이유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경영위원 인사인 셈이다.

노조무시 갈등유발 인사…겉다르고 속다른 박정훈식 폭주 예고

또한 박정훈 사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노조 무시의 일방통행을 가속화하겠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내고 있다. 입으로는 ‘내부갈등을 끝내자’ ‘노동조합의 공헌에 감사한다’고 했으나 노사관계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하는 팀장급 인사 조차 교체하지 않고 유임시킴으로써 노동조합이 창업주에 대한 명예회장 추대 조치를 취한 이후, 노조 무시 폭주 체제를 가속화하겠다는 뜻을 공고히 한 것이다. 노동조합은 문제적 언행을 반복하고 있는 인사에 대해 단체협약에 따라 징계요구하고 해당 인사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일개 팀장급 인사에까지 노사갈등을 부채질하며 노사관계에 대한 겉 다르고 속 다른 협량과 낡은 인식을 바닥까지 드러내 보인 박정훈 체제의 앞날에 깊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전략과 비전의 실종 속에 원칙을 무시한 자기 사람 챙기기나 일삼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박정훈 체제에 노동조합과 구성원의 인내심은 고갈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향후 임금 및 단체협약 개정 협상 과정을 통해 이러한 경영행태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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