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함께 지상파의 거함 SBS호는 밑바닥에 수익유출의 구멍이 뚫려 버렸다. 선원들은 SBS호에 뚫린 구멍을 막아야 한다고 아우성쳤으나, 선장과 갑판장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연료가 줄줄 새는 배를 고칠 생각은 안하고, 구멍난 밑바닥에 임시방편으로 반창고를 떼었다 붙였다 하며 선원들을 채찍질했다.

이러다가 언젠가 배가 침몰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자, 배 안의 민심은 점점 흉흉해졌다. 배가 가라앉든 말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며 탈출을 감행하는 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그나마 버티고 있을 때 한 몫 챙기고 보자는 불온한 리더십이 배 안을 탁하게 오염시켰다.

그럼에도 SBS호가 10년이나 버텨 온 것은 물이 차오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혼신의 힘을 다해 노를 저은 선원들의 땀과 노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달라졌고, 노 젓는 선원들이 먹을 식량마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더 이상 노를 저을 힘이 남아 있지 않고, 이제 선원들끼리 골육상쟁을 벌여야 가라앉는 배에서 살아남는 것 아니냐는 음울한 자조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 10년, 갈등과 반목, 불신 속에 표류해 온 SBS의 슬픈 자화상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미디어 격변이 이미 SBS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밑바닥에 구멍 난 배처럼 수익 유출 통로를 남겨 둔 지주회사 체제 아래 핵심 판매 기능과 제작, 유통 기능을 잃은 SBS는 더 이상 버틸 체력이 남아 있지 않다. 문제 해결을 위한 1년 여의 노사간 논의는 소득 없이 공전됐다. 먼 길을 돌아 노동조합이 내린 결론은 결국 문제적 착취 구조인 SBS의 수익유출 통로를 완전히 제거하는 <지주회사 체제의 완전한 해체>이다. 노동조합은 <SBS와 SBS 미디어홀딩스의 합병>을 통해 지난 10년 간 노사갈등의 진원이자, 수익 유출로 SBS를 고사위기에 빠뜨린 지주회사 체제를 완전히 해체하자고 지난 12일 노사협의회를 통해 사측과 대주주에 최종적으로 제안했다.

이는 합의 시한을 넘긴 채 1년 이상 지속돼 온 SBS 수익구조 정상화 논의에 대한 노동조합의 최종 결론이며, 미디어 홀딩스 합병을 통한 SBS 정상화 외에 어떠한 소모적, 지엽적 논의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불신’과 ‘착취’의 기억…SBS 미디어홀딩스 체제에 종언을 고한다. 

지난 2004년, SBS는 지상파 방송 재허가 심사에서 탈락 위기에 놓였다. 창립 당시 대주주가 약속했던 이익의 사회환원 약속 불이행이 표면적 이유였으나, 창사 이래 지속된 보수편향의 불공정 방송과 대주주의 방송 사유화에 대한 사회 각계의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던 상황이었다.

대주주인 태영이 SBS에서 축출될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상황, 노동조합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지상파 방송으로 거듭나도록 SBS의 내부 개혁작업을 주도하겠다는 노동조합의 약속과 설득으로 SBS는 재허가 탈락 위기를 넘겼다.

이후 노와 사, 시청자 대표의 참여 아래 소유와 경영 분리의 원칙을 세우고 경영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그 결과물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이 이뤄졌다.

당시 사측과 대주주는 소유경영 분리를 제도화하고 방송 공익성을 높이는 지배구조를 확립해 내부거래 투명성도 증대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노동조합은 대주주와 사측의 선의를 신뢰했다.

하지만 이런 신뢰는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깨져 버렸다. 아니 배신으로 되돌아 왔다. 방송법 상의 지분제한 없이 지주회사를 지배하게 된 태영은 배타적으로 SBS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 대주주는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사문화시키면서 SBS 방송을 다시 사유화했다.

또한 내부거래 투명성을 증대하겠다던 약속은 ‘착취’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지주회사 체제 아래 SBS는 타 관계사와 불공정 계약 속에 수탈적 거래로 빈사상태에 빠지기 시작했고, SBS의 수익을 빼돌려 운영되는 지주회사 체제 아래 경쟁력 강화는 어불성설이었다.

노동조합이 사측 자료를 근거로 추산해 본 결과, 지금까지 적어도 3천 7백억원대의 SBS 수익이 지주회사 체제 하에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됐다. SBS가 창사 이래 지금까지 모아놓은 유보금에 육박하는 액수가 지주회사 체제 10년동안 고스란히 유출된 셈이다.

이러한 투자여력이 SBS 내부에서 경쟁력 강화와 미디어환경 변화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적절하게 쓰였더라면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다.

유례없는 기형적 지배구조...껍데기만 남은 SBS 미디어홀딩스

SBS의 콘텐츠 수익을 착취하는 것 외에 어떠한 정상적 기능도 수행하지 못했던 SBS 미디어홀딩스는 내용적으로는 이미 해체된 상태다. 미디어홀딩스는 콘텐츠 제작 및 유통, 방송 경영 등 모든 기능을 이미 SBS에 위탁한 상황이다. 사장을 포함해 총 직원 5명만이 남아 방송법 상 지분제한이 없는 타 계열사에 대한 태영의 배타적이고 직접적 지배력 관철, 그리고 SBS 이익 유출이 가능한 법적 구조를 유지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껍데기 체제인 것이다. SBS 구성원들은 지난 해 3월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주회사 체제 유지에 대한 지지여론이 0%로 문제적 지배구조를 이미 오래 전에 탄핵했다.

SBS의 미래 생존이 불가능한 홀딩스 체제 

SBS는 지상파 방송의 급격한 영향력 상실과 맞물려 모든 플랫폼을 관할하는 콘텐츠 비즈니스의 컨트롤 타워로 위상을 재정립해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 하지만 SBS가 아닌 홀딩스 밑으로 핵심 기능을 빼앗긴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미래형 조직 재편에 필수적인 투자여력과 기능의 한 축이 주식 한 주 없는 타 계열사로 떨어져 나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SBS로는 미디어 격변 속에 살아 남을 수 없다. 이대로라면 구성원들은 임금을 고사하고 일자리 조차 장담할 수 없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노동조합이 지난 해 RESET! SBS! 투쟁을 통해 SBS의 당면 위기를 타파하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10.13 합의 부속 합의문에 ‘SBS 수익구조 정상화를 위한’ 방안 논의가 포함된 것도 지주회사 체제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SBS 구성원들의 생존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기능이 수직 계열화되고 투자여력이 내재화된 경쟁사들은 기획-제작-유통 기능의 통합과 재배치를 통해 미래형 조직으로 정비를 서두르며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SBS만이 지속 불가능한 기형적 체제에 묶여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지난 1년 여 간 노사간 논의에서 지주회사 체제의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해법들이 논의됐으나, 사측의 방안은 하나같이 SBS의 이해와 지속적으로 충돌하는 미봉책이었으며, 노동조합이 제안한 기획-제작-유통 기능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SBS 중심의 콘텐츠 비즈니스 총괄 체제에 대해서는 사측이 비싸고, 실리가 없는 방안이라며 지속적인 거부의사를 밝혀 왔다.

SBS-미디어홀딩스 합병으로 기능과 투자여력을 SBS로!

노사간 이견 속에 고집만 부리며 허비할 시간이 없다. 누군가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노동조합이 내린 결론이 미디어홀딩스 합병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 해체와 SBS 정상화인 것이다. 이는 사측이 우려하는 SBS의 재정적 손실 없이 지주회사 체제 아래 흩어진 기능을 SBS 아래로 귀속시키고, 유출된 수익을 합법적으로 되찾아오는 유일한 방안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사측은 회사 상황이 안 좋으니 구성원들의 인건비부터 깎자는 임금협상안을 들고 나왔다. 구성원들에게 위기의 책임을 전가해 거꾸로 갈등을 부추기는 한심한 작태이다. SBS호의 배 밑바닥에 난 구멍 막을 생각은 안 하고 노 젓는 선원들이 먹을 식량부터 바다에 던지라는 식이다. 제대로 된 경영진이라면 힘을 합해 물이 새는 구멍을 막고 배부터 고칠 일이다. 바로 그렇게 구멍을 막고 배를 고치는 첫 수순이 SBS와 미디어홀딩스 합병을 통한 SBS 중심 체제의 복원인 것이다. SBS호의 복원력과 추진력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래도 파도를 넘지 못할 상황이면 구성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게 합당한 수순이다.

박정훈 사장은 지난 달 창사기념식에서 내부갈등을 끝내자고 강조한 바 있다. 10년 갈등의 원천인 지주회사 체제를 해체하고 SBS 중심으로 투자여력과 기능을 합법적으로 집중하는 것 말고 더 확실한 갈등해결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디어홀딩스 합병을 통해 10년 갈등 체제를 해체하고 SBS를 중심으로 기능과 투자 여력을 집중해 위기를 돌파하는 것 말고 다른 생존의 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원하는 것은 파국이 아니라 미래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필요한 선택이 무엇인지 답은 이제 사측과 대주주의 결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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