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0일 SBS 노와 사, 대주주는 수익유출을 둘러싼 10년 갈등을 끝내고 SBS 정상화를 위한 역사적 합의에 서명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합의문 서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태영 윤석민 회장에 의해 SBS 경영 독립이 심각하게 침탈당하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2.20 합의를 통해 노와 사, 대주주 3자는 10년 간 대주주의 직접 지배 아래 SBS 수익유출의 주요 통로 가운데 하나로 기능해 온 SBS 콘텐츠허브의 경영권을 SBS로 넘기는 1단계 조치를 취했다. 앞으로 추가 조치를 거쳐 콘텐츠허브의 유통기능과 자산을 약속된 시점에 완전히 SBS로 내재화하겠다는 사측의 제안이 있었으며, 노동조합은 이를 수용해 비공개 합의에 반영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사내 곳곳에서는 유통기능과 자산 환수가 완료되기 전에 드라마 제작기능과 유통기능을 SBS 외곽에서 합병하려는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다. 노사 합의와 정면으로 어긋나는 방향의 이런 움직임들이 대주주와 사측 일부 인사들의 공조 속에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단서들이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다.

  우선 사측은 지난 주 SBS 드라마본부장으로 스토리웍스 사장인 김영섭 상무를 유통기능을 담당하는 콘텐츠허브 사장에 기용했다. 사측이 드라마 제작기능을 스토리웍스로 이관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드라마 제작과 유통기능을 담당하는 회사의 경영을 한 사람에게 맡긴 것이다. 두 회사를 합병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고는 기능 분리를 하려고 하는 자회사와 기능 흡수가 예정된 자회사에 같은 사람을 임명하는 어처구니없는 인사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상암동 프리즘타워 16층에는 이미 두 회사의 간부들이 사실상 함께 근무하도록 공간배치까지 마무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상 공간적, 기능적 합병 작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하겠다는 노골적인 시도다. 사측은 제작과 유통기능을 한 사람이 관리하게 함으로써 시너지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둘러대고 있으나, 노동조합은 이를 노사합의를 파기하려는 명백한 의사표시로 간주한다.

  이번 2.20 합의에 따라 SBS 자회사가 된 콘텐츠허브 이사진도 대주주가 완전 장악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주 콘텐츠허브는 과거 SBSi 대표를 지낸 장진호 씨를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장 씨는 윤석민 회장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동문으로 지난 2000년부터 SBSi 경영에 함께 참여했던 최측근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콘텐츠허브 이사회의 다수를 SBS 자회사 편입 이전에 윤석민 회장이 임명한 이사들로 채우고 있다. 이미 SBS에 콘텐츠허브에 대한 지분을 800억 원이 넘는 거금을 받고 넘긴 SBS 미디어홀딩스가 사실상 콘텐츠허브 경영을 장악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같은 이사진 구성이라면 앞으로 콘텐츠허브의 기능과 자산을 SBS로 내재화하는 작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다.

  SBS 이사진 구성은 미디어홀딩스의 권한이지만 콘텐츠허브를 비롯한 SBS 자회사 이사진 구성은 SBS 경영진의 권한과 책임이다. 그러나 독립적인 이사 선임 권한을 행사해야 할 SBS 경영진은 스스로 이런 권한을 포기한 채 윤석민 회장에게 그 권한을 순순히 내어주었다. 특히 SBS 독립경영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이동희 경영본부장은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손발 노릇을 하며 SBS 내부의 독립적 의사결정 과정을 무력화시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 콘텐츠허브 이사진 구성과 사장 선임은 윤석민 회장이 2.20 합의에 담긴 SBS의 구조 개혁 방안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회사의 조직을 끌고 가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명백히 한 것이다. 이미 회사 안에는 지금 추진 중인 드라마 분사를 시작으로 SBS에서 제작 기능을 모조리 빼내려 한다는 이야기가 사측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노사합의에 반하는 자회사 합병 기도를 통해 윤석민 회장과 사측이 추진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노동조합은 윤석민 회장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며 SBS의 독립적 경영권을 침해하면서 콘텐츠허브를 장악하려는 것을 2.20 합의는 물론 그 동안 해온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형해화시키고 사실상 SBS 경영을 다시 장악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인다. SBS 자회사에 대한 인사권까지 자신의 직접 관할 하에 둠으로써 SBS 경영진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다시 자신이 모든 것을 관할하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저의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엄중히 경고한다.

  대주주가 스스로 선언하고 서명한 소유경영 분리 원칙과 노사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고, SBS 정상화를 바라는 구성원들과 방송 독립을 성원해 온 국민의 바람을 무참히 짓밟으려는 불온한 시도를 계속할 경우,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다. 전문 경영인을 통한 SBS의 독립 경영이라는 소유경영 분리 약속은 선심 쓰듯 기분 내킬 때만 지켜도 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의 경영 환경 악화 속에 모든 사람이 힘을 모아도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직을 분란과 갈등으로 내모는 시도를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SBS를 부당한 경영 간섭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SBS 구성원들의 임명 동의를 통해 방송독립과 경영독립 수호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부여 받은 박정훈 사장과 경영진은 노사합의와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지켜낼 의지가 있는지 태도를 분명히 하라.

2. 윤석민 회장은 더 이상 선을 넘지 말라. SBS에 대한 소유경영 분리 약속과 그 동안의 노사 합의를 준수하라.

3. SBS 경영진은 콘텐츠허브에 대한 주주권을 행사해 소유경영 분리 약속을 깨고 대주주가 부당하게 선임한 이사진을 전원 해임하라.

4. 이번 SBS 콘텐츠허브에 대한 대주주의 부당한 인선에 의해 임명된 김영섭 콘텐츠허브 대표, 장진호 콘텐츠허브 이사회 의장, 그리고 대주주의 손발 노릇하며 스스로 SBS 독립 경영 약속을 무너뜨린 이동희 경영본부장은 즉각 책임을 인정하고 사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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