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는 SBS 공동체가 위기에 허덕일 때마다 구원투수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 2004년 재허가 취소 위기를 넘어선 것도, 10년 지주회사 체제의 수탈적 수익유출 구조를 바로 잡은 것도 노동조합의 강력한 견인과 투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이런 노동조합의 노력 덕분에 박정훈 경영진은 기존의 다른 경영진이 누리지 못했던 수익 개선 효과를 덤으로 얻고 있다. 노동조합의 투쟁은 결과적으로 박정훈 경영진의 자양분이 된 셈이다.

 또 지상파 위기와 녹록치 않은 경영 상황을 고려해 노동조합은 이미 여러 차례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최대한 사측에 협조적인 자세로 위기극복 노력에 화답해 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난 3월 윤석민 회장의 취임과 함께 박정훈 경영진은 낯빛을 바꿨다. 신뢰를 송두리째 파괴했고, 노동조합의 SBS 정상화 노력을 ‘경영개입’이라는 고약한 단어로 포장해 공격하고 임기 연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직은 사분오열됐고 미래에 대한 싸늘한 불안감이 SBS를 짓누르고 있다.

 수익구조 개선과 수직계열화 체제 구축은 지속가능한 SBS의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지 혁신의 완성이 아니다. 중단된 혁신의 앞날에 노사간 신뢰없이 가능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신뢰복원과 제대로 된 미래비전 없이 위기는 극복될 수 없으며, 기존의 노력과 성과는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반대 투표가 아닌 동의 투표로 임명동의제도 개선!                                

 이런 상황에서 시작되는 이번 임금 및 단체협약 개정 협상의 목표는 너무도 명확하다.

 무너진 독립 경영 체제와 노사간 신뢰를 회복할 선제적 조치가 마련돼야 하며, 향후 신뢰 붕괴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단체협약에 명기된 기존 임명동의제도에 대한 확대 및 강화를 사측에 요구하고 강력히 협상해 나갈 것이다.

 지난 2017년 처음 시행된 임명동의제도는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재적 60%의 반대가 있을 경우 임명을 철회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첫 시행 결과, 반대표로 임명여부를 결정하는 제척 투표의 성격 때문에 유권자 20%에 육박하는 기권표가 모두 찬성으로 자동 간주되는 부작용이 확인됐다. 이러한 제도적 결함 때문에 구성원들의 정확한 의사가 임명동의 과정에 반영되지 못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구성원의 ‘반대표’가 아니라 구성원의 ‘찬성표’를 기준으로 임명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명실상부한 동의 투표 형식으로 임명동의제도를 개선할 것을 사측에 공식적으로 요구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기권표가 자동으로 찬성표로 계산되는 폐해를 바로잡고 구성원들의 의사표시가 보다 정확하게 임명동의 투표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사장 후보자의 미래비전, 구성원은 들을 권리가 있다!

 또한 현행 제도 하에서 후보자에 대한 아무런 검증 절차가 없는 맹점도 보완할 과제다. 기존 임명동의제 과정에서 박정훈 사장은 단 한 장짜리 무성의한 입장문을, 그것도 최소한의 미래비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촉구에 따라 마지못해 내놨을 뿐이다. SBS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생사를 맡길 사장 후보자의 자질과 미래비전, 경영 전략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듣고 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 임명동의 과정에서 이러한 청문과 검증이 가능하도록 후보자들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단체협약 개정 협상의 주요 과제로 다룰 계획이다.

 경영진은 2019 임단협 상견례 자리에서 조차 지상파 위기 상황을 예외없이 거론하고 나섰다.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다. 위기는 오래된 것이다. 위기가 아니라 이제 SBS 구성원들이 매일 살아가는 일상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양치기 소년의 고장난 라디오 소리 같은 ‘위기’ 타령이 아니라 이를 넘어설 미래의 비전과 전략이다. 노동조합은 수년 간 인내와 협력으로 SBS의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해 왔으나 이미 노사간 협력 기반을 허물어버린 사측에 대해 예전과 같은 태도로 임금 협상에 나설 수는 없다.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과 고통분담이 우선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협조와 인내, 고통분담을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려면 이번만큼은 경영진과 대주주가 솔선해 SBS를 위한 고통분담 방안을 먼저 내놓아야 할 것이다. 위기 극복 실패와 경영 난맥상의 책임을 구성원들에게 전가해 고통을 전담하게 하려는 시도에 노동조합은 한 발짝의 양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촉구한다. 노사관계를 망치고 무책임으로 일관해 온 대주주는 지금이라도 태도를 바꾸고 노동조합과 대화를 통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기 바란다. 그럴 의지를 보여준다면 노동조합도 열린 자세로 나설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확실하게 태도를 밝히기 바란다. 노동조합에 남은 인내의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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